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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강점기 의성경찰서 자리입니다. 김규선 201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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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교회 장로님의 증언

 

저는 (추성환목사) 의성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금의 의성경찰서가 일제강점기 때는 그 자리가 아니고 옛 문화원자리가 옛 의성경찰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화관광과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어서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서 여러분의 증언을 받자합니다. 오늘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김재홍 장로, 황광국 장로, 오세원 장로의 증언

 

첫 번째, 김재홍 장로님의 증언(당시24)

주기철 목사님이 의성으로 압송된 것은 우리 교회 시무하신 유재기 목사님이 의성유치장에서 수감되고 의성농우회 사건으로 고생할 때 함께 수감되었다.

그때 당시에 의성경찰서에서 의성교회 초대 김원희목사 이규화장로님이 계실 때 배형사 문형사가 교회에 와서 동방요배를 강재로 시키고 나서 예배를 드렸다.

그 때 당시의 의성경찰서장 이름 그리고 경찰관 이름을 알고 그 때 당시의 좌익청년들이 경찰서장과 경찰관을 끌고(붙잡고) 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경찰서장 유복을 군청으로 가고 송태원 이란 사람도 붙잡아 군청으로 갔다.

지금의 국민은행 쪽에 구치소가 있었다. 고문 받는 소리가 있었다.

 

 

두 번째, 오세원 장로님의 증언

 

나는 의성군 단촌면 장림교회 출신입니다. 1941년에 의성 호미동으로 이사를 왔어 의성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의성교회 목사님(김원희목사)이 우리 외삼촌 이였습니다. 장림에서 교회가 많이 핍박을 받아 의성으로 이사를 왔다. 19422년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옛날 의성중학교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아옥 청목이라고 그때 당시는 이곳이 중앙통 이였다.

의성 경찰서와 의성읍사무소가 있었다. 경찰관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목격했고 체력단련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치소가 있었고 서장실이 있었고 유치장도 있고 한옥으로 잘 짖어졌습니다. 그때 당시 경찰관 봉급이 27원이고 나는 교사조수로 있으면서 봉급30원을 받았다. 그리고

1947년도 의성소방서창설 그때 직원12명 소방사로 생활했다. 그때 경찰관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보았고 경찰서를 자주 보았다.

 

 

 

세 번째, 옛날 경찰관의 증언

나는 의성군 사곡면 양지동네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의성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나도 그 당시에 의성경찰서가 이 곳이라는 것을 알고 그 앞으로 출입을 했습니다.

중학생 일 때 경찰서에 왔어 놀았다.

 

 

네 번째, 황광국 장로님 증언

이 건물이 부속건물이 아니라 본 의성경찰서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무서워서 잘 오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나는 무슨 용기인지 이곳을 별생각 없이 출입을 했습니다.

이곳이 의성경찰서라는 사실은 의심 할 것이 없는 사실입니다.

이 의성경찰관들이 우리 의성교회를 핍박하고 많이 힘들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과 청년들이 고생을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증언자(조합장)

 

지금 의성경찰서 자리에 큰 한옥건물이 있어서 남부초등학교 교실이 없어서 사곡초등학교와 의성경찰서를 임시 교실로 남부초등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의성경찰서로 이동하기 전에 의성문화원 자리가 의성경찰서가 있었다.

6.25 전쟁 2년 전쯤 때(1949) 새벽 무장공비가 의성경찰서를 방화를 해서 새로 경찰서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또 다시 옛날 경찰서 자리에서 경찰서로 사용하게 했어 경찰업무를 하게 되었다. (오성호씨 증언 유승모장로 증언) 새로 지금의 의성경찰서를 개축했다.

구청사는 국민방위군청사로 이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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